2014년 4월 16일 아침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 떠나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온 국민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사 직후엔 대부분의 국민이 참사에 대해 아파하고 한국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하거나 폄훼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의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의 막말은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묵묵히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고 노력한 목사가 있다. 세월호 희생자인 유예은양이 출석하던 안산 화정교회의 박인환 목사다.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10주기를 어떻게 맞이하는지 궁금해 지난 9일 서울 용산역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계속 도돌이표 같아… 진상규명 다시 확실히 시작해야”
큰사진보기 ▲ 박인환 안산 화정교회 목사 ⓒ 이영광

관련사진보기

– 오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해요.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소회가 어떠세요?

“10년이 지나도 제대로 바뀐 거 없이 계속 도돌이표 같아서 안타깝죠.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만해라,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니까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죠.”

– 진상규명이 안 됐다고 하셨잖아요. 일각에선 진상규명이 끝났는데 유가족이 그걸 못 받아들인다는 주장도 해요.

“저는 유가족이 아니지만 곁에서 보더라도 이건 상식적이지 않아요. 진상규명을 위해 만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추천위원들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고요. 정부는 특조위를 서둘러 해산했습니다. 시간 다 보내고 아무것도 못 한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집요한 방해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냥 ‘특조위 조사, 검찰 조사 등 할 만큼 했는데도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라고 하죠. 그건 아주 무관심한 말이자 유가족들에게 잔인한 얘기입니다. 진상규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확실히 해야 합니다.”

– 목사님은 세월호 참사 후 독서대를 만드는 등의 일을 해오셨어요.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나요?

“10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유가족이 있는 교회의 목사이다 보니까 세월호 특조위 설치해달라는 서명도 받으러 다녔고, 또 배지를 제작해서 나누는 일도 하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세월호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참사 이듬해인 2015년 1월 25일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회 못 가는 유가족들을 모아 분향소 기도실에서 예배를 시작했어요. 그게 아직 이어져서 분향소가 문 닫은 다음에는 세월호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드려요. 10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게 감사한 일입니다.(관련기사 :”쫓겨난 세월호 가족들… 교회는 예수 믿는 집단 아니었다” https://omn.kr/1ilhk)

두 번째는 2015년 7월쯤 안홍택 목사와 제가 유가족들 모아서 목공소를 시작했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9년간 이어져서 지금은 ‘416희망목공협동조합’이 됐습니다. 아직 수익 구조가 월급 받아 갈 만하지 못해 경제적으로는 열악하지만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

– 지금 목공소에서는 어떤 걸 만들어요?

“가구도 만들고 성구도 만들어요. 최근엔 친환경 목제 상패를 개발해서 만들고 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416목공소 엄마·아빠들의 기술이 상당히 좋은데 제품을 만들어도 일반 대기업들하고 가격 경쟁이 안 돼요. 가격 경쟁이 안 되니까 목공소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2018년 목공소 엄마·아빠들과 함께 브루더호프 공동체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 재세례파라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목공 공동체입니다. 먼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이지만 ‘당신들의 아픈 이야기를 기억한다’며 환대해 주는 것을 보며 유족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민정이 아빠가 ‘목사님, 여기가 천국이네요’라고 말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세월호 지겹다며 유족들을 폄훼하고 짓밟는데, 그곳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겁니다. 거기서 얻은 힘을 가지고 돌아와 협동조합으로 시작을 한 거예요.”

– 참사 후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어요. 세월호 참사 후 3년 만에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달라졌을까요?

“하나도 안 달라졌어요.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잖아요. 이태원 참사 생각하니까 하나 달라진 것은 있네요. 권력자들이 대처하는 게 더 사악해지고 노련해졌다는 거죠. 박근혜 정부는 분향소라도 차려줬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것도 못하게 하고요. 세월호 진상 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을 제대로 했다면 이태원 참사 같은 건 일어날 일이 없는 거죠. 그런데 정부나 일부 시민들의 태도가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하고 똑같더라고요.”

– 어떤 면에서 똑같나요?

“예를 들면 ‘놀러 가다 죽은 애들’ 같은 프레임 만들어서 폄훼한다든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호소하는 부모들을 이상한 집단인 양 프레임을 씌운다든지, 그렇게 프레임 씌우고 가짜뉴스를 만드는 일부 언론들의 보도에 따라서 사람들이 또 그대로 폄훼한다든지 하는 걸 보면 달라진 게 없어요.”

– 무엇 때문에 안 달라졌을까요?

“국민들의 마음을 ‘돈’이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것보다는 ‘이게 나한테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생각에 매몰돼 있으니 달라지겠습니까?”

“기억해야 선한 역사이뤄갈 수 있다”
큰사진보기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2일, 안산시 단원구에 10주기를 맞이하는 현수막이 길가에 걸렸다. ⓒ 김성욱

관련사진보기

– 세월호 유가족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그러나 2022년 10월 서울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잖아요. 한국은 안전한 사회일까요?

“제가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고 안전하지 않은 사회죠. 참사가 있으면 ‘이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죠. 저 이웃이 얼마나 아플지, 어떻게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같은 생각들이 없어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안전하지 않죠.”

– 목사님 시무하시는 교회에 단원고 희생자인 유예은양이 출석했잖아요. 요즘도 유예은양이 생각 나나요?

“그럼요. 교회 마당에서 뛰놀고 인사 잘하던 아이인데, 10년이 지났어도 어제 본 것처럼 다 기억이 나지요. 예은이 생일날, 예은이가 물속에서 건져진 날 등이되면 예은이 엄마가 많이 괴로워해요. 그런 날에는 저와 아내 그리고 예은이 엄마가 예은이 안치된 곳에 가서 기도회를 하고 오죠. 그럴 때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예은이 생각이 나고 괴롭죠.”

–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 목사들의 막말로 한국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10년이 지난 후 한국 교회는 어떤가요?

“한국교회의 주류는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소수의 교회 목사와 성도들이 이 시대의 증언자 역할을 해오고 있죠. 소수의 교회, 소수의 목회자, 소수의 성도만이 어떻게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조금이라도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온 것 같아요.”

– 목사님에게 세월호는 어떤 의미일까요?

“정신을 화들짝 들게 하는 죽비 같아요. 저도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까란 생각을 가진 평범한 목사였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대하면서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지만 내가 정신 차리고 그리스도인답게 세월호에 대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비판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4년 전에 기독교 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선거에 출마했어요. 교회를 좀 건전하게 변화시켜야겠다는 충심으로 임했는데 프레임이 씌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세월호 목사라는 프레임이에요. 나를 모르는 목사와 장로들은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목사야’라는 말 한마디에 저를 무조건 안 찍었죠.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니다 보면 ‘왜 목사가 이걸 달고 다니냐’고 야단치는 장로들도 있어요. 그럼 나도 야단쳤어요.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 힘들지 않았나요?

“힘든 게 많이 있었죠. 선거는 현실이잖아요. 그것 때문에 어마어마한 표가 날아간 거죠. 그렇지만 끝까지 세월호 배지 떼고 선거운동 하지 않았습니다. 감독회장 되는 것보다 끝까지 세월호 가족들 옆에서 같이 예배하고 서 있게 된 것이 더 크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주세요.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을 해야 선한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한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들이고, 또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형제자매들인데 형제의 아픔을 남의 것이라고, 그 사람 것이라고 하지 말고 기억하면 사회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 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