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 현안을 두고 대국민 담화에 나섰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번 대국민 담화에는 정부의 실제적인 변화나 다른 접근에 대한 의지는 빠져있었고, 말뿐인 ‘개혁 의지’를 강조하는 데 그쳤다(관련 기사:의대 2천명 증원 고수 윤 대통령 “국민 성원·지지 간곡히 부탁” https://omn.kr/282p3).

의료개혁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역시 의대 증원 문제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한 차례 시도했다가 의료계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며 좌절된 바 있다. 이를 승리라 여겼던 걸까,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에도 의료계는 같은 방식으로 반발하고 있다.

다만 현 정부도 강경모드 고수, 쉽게 물러나지 않으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의료계는 전공의 사직에 그치지 않고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의대 증원이 의료개혁의 전부는 아닌데, 정부와 의료계가 이 사안에만 매달리고 있는 듯해 의료개혁의 중요한 부분들이 왜곡되거나 사라질 지 우려된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과 그 안에 자리잡은 자본주의, 그렇게 속출하는 환자들의 불만과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류마티스 내과 의사이자 의료 정책 연구자인 김현아 교수가 쓴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다.
큰사진보기 ▲ 김현아, , 돌베개, 2023.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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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교수는 책의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개발도상국 시절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보험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진료 수가를 통제하며 여기까지 왔고, 통제는 필수의료에 더 강하게 가해졌다. 이런 조건에서 의료 현장에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문제적인 의료 시스템

낮은 진료 수가를 극복하고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먼저 양으로 때우는 방법을 쉽게 택할 수 있다. 의사에게 더 많은 환자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의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은 짧아진다.

그렇게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3분 진료’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병원의 ‘진료 활성화’란 이름으로 자행된다. 동시에 검사를 대량으로 처방해 돈을 버는 방법도 택할 수 있다. 김현아 교수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공의료기관들의 대규모 적자에서 보듯 낮은 진찰료 때문에 적정 진료만으로는 병원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사립 병원들에서는 그 손실을 검사로 메우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고 검사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시간은 뭉텅이로 잘려나가고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한 불신이 겹겹이 쌓인 틈을 첨단 기계와 화려한 검사 기기들이 오늘도 꾸준히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p.40)

짧은 시간 동안 모니터만 응시하며 환자를 처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진료 현장을 향한 불신은 이제 어느 정도 팽배해졌다. 의사보다 의료 기기를 더 신뢰하고, 의사의 진단은 무시한 채 검사 결과에 연연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가를 강하게 통제당하는 필수의료들은 병원 측에 골칫덩어리로 여겨지곤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이 필수의료 외 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내과 개원의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영양 수액’이라는 우스갯소리도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증원만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고, 다른 부분은 간단한 언급에만 그친 채 강경책만 내놓고 있으니 의료개혁이 반쪽짜리로 끝날 것 같아 걱정된다. 개혁은 생각보다 훨씬 세심해야 한다. 멀리 가지 않고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큰사진보기 ▲ 길어지는 의료공백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하며 의료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보호자가 환자를 옮기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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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의 핵심이었던 두 가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는 애초 기대했던 효과를 제대로 달성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경찰의 수사 역량, 인력과 예산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니 혼란이 가중됐다.

이런 우려와 더불어, 법령을 더 세심하게 정비하지 못한 탓에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경찰국 설치’라는 시도조차 있었다. 공수처 역시 인력이 다 갖춰지지 않은 채 출범했고, 여전히 인력이 보완되지 않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현 성과만 놓고 보면 ‘있으나 마나한 조직’이라 해도 어쩌면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개혁’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

언론개혁도 마찬가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두고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과 여당, 언론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 시작도 못해본 채로 거의 흐지부지되었다. 현재 정치권에서 이전만큼 언론개혁 이슈를 부각하려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젠 거의 개혁동력을 상실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선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의 주제에만 매몰된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며 또 다른 안건들을 함께 개선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의 저자인 김현아 교수는 이미 책에서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볼 때, 의료개혁에는 반드시 진료 수가 조정이 필요하다. 진료 수가가 조정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각종 검사와 성의없는 진찰로 환자가 소외되는 현상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진료 수가를 건드릴 경우 악화될 건강보험 재정도 고민해야 한다. 건강보험 외 보건의료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는데, 아직 예산 증액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당시 한 차례 언급되었던 공공의대도 살펴볼 만하다. 공공의대가 듣기에만 좋은 말이 아닌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려면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당시 공공의대를 법인으로 설립하고자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국립이 아닌 법인의 형태로 설립할 경우 이후 운영 책임은 오롯이 법인이 지게 된다.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의대마저 자본에 손을 벌리게 되고, 그래서 공공성이 희미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모형의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저의 제안도 의미있어 보인다.

기초의학도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책을 읽다 ‘의학자’라는 단어를 보고 멈칫했다. 의학도 학문이니 의학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내겐 이 단어가 너무 생소했다. 그만큼기초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보다 임상의학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더 많거나, 훨씬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 기초의학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의료개혁에는 기초의학의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외 더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면서, 의료개혁은 폭넓고 세심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정부도, 정치권도, 의료계도, 나아가 시민들도 변화해야 한다. 강경책으로만 가는 윤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사직하면서도 별다른 답은 내놓지 못하는 몇몇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도 저자의 지적은 따갑게 들릴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짧은 지적을 끝으로 서평을 마친다.

우리가 ‘교수’라는 직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문적 업적, 제자 양성, 정년 보장이 되는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직업’ 정도일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소명’, ‘시대의 양심’이라는 생각까지 든다면 참 좋겠는데 대학의 본질적인 의미가 훼손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그런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p.174)

교수에게 정년을 보장해주는 것은 어디 가서 으스대며 ‘내가 교수’라고 명함 자랑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그런 사회적 소명을 다하라는 이유일 터이니 말이다. (p.216)